[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도 그게 궁금하다
2020년 현재, 나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서울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며 여러 번 이사를 다녔지만, 서울을 벗어난 적은 없다. 아, 물론 2년 정도 남양주 별내에 산 적은 있지만, 주소지만 그럴 뿐 실상은 집 뒤가 서울 노원구 공릉동일 정도로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경기도에 살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내게 서울은 그저 거주하고 있는 도시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 동네나 작은 구 정도 규모에는 관심을 가져봤지만, 커다란 도시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다소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궁금증은 당최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땐 대체 어떻게 하면 도시를 열다섯 가지의 시선으로 볼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저자가 아무리 건축대학 교수라고 할지언정 자신의 전문 분야를 열다섯 가지나 되는 관점으로 다채롭게 바라보다니. 어쩌면 저자가 자신의 분야에 대해 많은 시간 생각을 거듭하고, 깊이 있게 고민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책은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주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다른 주제와 엮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어느 분야에나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가 이전에는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을 생각하게끔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저자의 의도나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하고 명확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상생’이라는 단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도시를 만들기에 도시는 인간의 삶이 반영되고 인간이 추구하는 것과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는 다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인간의 삶은 더 피폐해지거나, 더 행복해지는 것의 갈림길에 서있다.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휴면 스케일의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보행자 입장에서 그의 세상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매 순간 결정하는 각각의 행위들은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 삶 혹은 세상을 결정한다. 우리는 삶을 살 때 자신의 삶에 대해 주도적 선택권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이유에서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단순한 오락보다는 자신이 선택해서 만들어 가는 내러티브적인 오락을 선호한다.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첫째,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둘째,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셋째,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 준다.
도시를 형태와 재료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나누어 본다면 도시는 네 종류가 나올 수 있다.
형태 단순 + 재료 단순 = 한국의 아파트 단지
형태 복잡 + 재료 단순 = 그리스 산토리니 섬
형태 단순 + 재료 복잡 = 서울 논현동 뒷골목
형태 복잡 + 재료 복잡 = 서울 청담동 명품 플래그숍 거리
재료만 통일되었다고 다 아름다운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성이 드러나는 재료의 통일성은 일단 좋은 도시로 가는 한 가지 전략 중 하나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건축물에 적용한다면 그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새와 모양은 다르지만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새인형보다는 더 새와 비슷하고 새로부터 배운 것이 있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건강한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생태계가 변화할 때 한가지로 통일된 체제는 변화에 실패했을 경우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가 하나의 스타일로만 통일되어 간다면 한 번에 ‘훅’ 갈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 다양한 삶의 패턴과 모습이 유지되는 것이 좋다. 건축 역시 지역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